이학(耳學) 즉, 귀로 배우는 학문의 과정과 성과에 관한 글
하버드 대학에는 법률, 경제, 교육, 생물, 종교학 등 여러 분야의 유학생들이 있었다. 요사이 유행하는 말로 하면 '學際的 분위기' 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의학이나 생물학에서는 무엇이 제일 문제인가?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미국의 교육학이나 종교학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여러 학문 분야의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그야 말로 학구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런 유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이학(耳學)을 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내가 유학한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이학이 발달되어 있는데, 그 이유로는 미국이란 나라가 높은 봉급으로 교수를 고용하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학이라는 것은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과 접하면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사고 방식을 배우는 거을 말한다. 따라서 우수한 인재가 모여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학'이 발달될 소지도 크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학'이 발달하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는 예로서 자주 거론되는 것으로 미국 사람들은 질문하는 기술이 좋다는 것이다. 사실은 기술이 좋다라기 보다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질문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컬럼비아 대학에 있었을 때 만난 한 제자 생각이 난다. 멀리서 그의 모습이 보이면 교수들이 피해갈 정도로 만날때마다 질문을 해대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밤 늦은 시간에도 교수 집에 전화를 해서 한 시간씩이나 질문을 하기도 했다. 외모는 뛰어났지만 컬럼비아 대학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 못 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경력이 특이하고, 면접시 추진력을 인정받아서 입학시킨 학생이었다.) 그의 질문은 대부분 전혀 조리가 안 맞고 초점이 없었다. 나도 대학이나 집으로 걸려 오는 전화를 통하여 그의 왕성하긴 하나 시시한 질문에 몇 번이나 손을 들었다.
그런데 입학해서 2년 정도 지나니까 그는 더 이상 시시한 질문만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가끔 질문다운 질문을 할 때도 있었고 4학년이 되어서는 마침내 우수한 논문을 써내어 학계 일류의 논문지에 발표할 정도로까지 성장하였다. 그는 그 후 내가 하버드 대학으로 옮길 때 강사로 따라왔다가, 스탠퍼드 대학의 조교수를 거쳐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 학생에게서 전형적인 예를 보듯이 미국에서는 질문을 통해 배운다. 즉, 귀로 배우는 '이학'이 학문의 한 방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질문' 과 '시시한 질문'을 구별하고, 실제로 답을 알면서도 자기 재능이나 발상을 과시하기 위하여 질문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좋은 질문이나 시시한 질문에 상관없이 모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질문하고 할 수만 있다면 질문만으로 다 배워 보겠다는 자세가 있다.
일류 대학의 학생이라면, 이 이학만으로 단기간 내에 상당한 수준까지 배울 수가 있다. 가령, 3,4백 페이지 분량의 책에 씌어진 내용을 배우려고 할 때, 학생은 교수에게 가서 "이 책에는 무엇이 씌여져 있습니까?" 라고 일본의 대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 다소 유치하고 대략적인 질문이지만, 질문받은 교수는 그에 대해서 학생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면 그 설명에 대해서 또 질문하고, 그것을 몇 시간에 걸쳐서 되풀이하는 동안에 학생은 그 책의 요점을 파악해 버린다. 두꺼운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이해하지 못해 포기하는 것보다 질문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물론 상세한 부분은 스스로 읽어야 되겠지만, 대체적인 요점이나 골격을 파악하면 책에 대한 이해는 훨씬 빠르다.
학생과의 관계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인데, 일본 학생은 'why' 라든가 'how'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말할것도 없이 'why'라는 것은 '왜'라는 것인데, 이것은 '진리(眞理)'를 물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 학생은 'what'이라는 형태의 질문을 많이 한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라는 식으로 물어본다. 이것은 '사실(事實)'을 묻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 학생은 사실의 배후에 있는 진리를 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why' 라고 묻는 것이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 나름대로 훌륭한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정보(情報)를 진리로 착각할 때도 있고, 사실을 모르면서 진리라는 말을 혼동하여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편 사실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출발하는 것도 위험하다. 사실로 진리를 통하여 간파하는 것은 자기의 일이며 딴사람에게 물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도 있다. 어느 쪽이 좋다고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미국과 일본과는 그러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학'은 단순히 학문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이용된다. 예를 들어 일본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미국 사람은 일본에 관해서 쓴 책을 읽기 보다 우선 주변의 일본 사람에게 자꾸 질문한다. 나도 주변의 미국사람에게서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해야 한다. 대답해 주지 않으면 자기도 상대방에게 그와 비슷한 질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은가? 일본이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인이란 어떤 성격을 가진 국민인가? 자기 스스로도 생각해 보고 책을 읽고 배워야 한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배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는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눈에 안보이는 특성이나 일본 사람 특유의 생활 감정, 사고방식 등에 대해서 상당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전국투어팀은 선배님들을 찾아가서 학문에 대한 내용에만 국한되지않은 훌륭한 이학을 하고 있겠죠? 대학 시절에 이학을 통해서 빨리 배울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전공에 관련한다면 위키위키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단. 목적과 방향성없는 질문. 그리고 잘만들어진 메뉴얼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의 질문 은 조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좋은 문서가 있는 가운데에서 선배들이 할 일은 '고기낚는 법' 을 가르쳐주는 것일지도.
또하나 문득 떠오르던 모 학회의 제 친구의 글. '우리가 모이면 꼭 항상 컴퓨터에 관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을까..'
우리는 컴퓨터공학인이라고 말하기전에는 그냥 일반적인 사람일텐데요.
우리는 컴퓨터공학인이라고 말하기전에는 그냥 일반적인 사람일텐데요.
공부를 효율적으로(비용 대 수익 면에서)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문하기를 잘(자주)하고 또 잘(능숙하게) 합니다. 또 하나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묻든 꺼리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도, 물을 때는 주변에서 가장 적당한 사람, 최적의 사람을 찾아 묻는다는 점입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차드 파인만(그의 전기는 물리학과 인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합니다. 밤을 단숨에 샐 겁니다)은 이런 질문하기의 기술과 용기를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모 프로젝트의 중간에 투입되었을 때 관련 기술지식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현장 기술자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끊임없이(대여섯시간?) 질문을 해서 순식간에 그들의 지식을 흡수한 이야기는 전설로 회자되기도 합니다.
도올 김용옥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남들과 달리 애둘러 묻지 않고, 직접적으로 묻습니다. "양자 역학이 뭔가요?" 거기에 "소립자, 원자, 분자 등의 미시적인 계에 적용되는 역학입니다" 식의 사전적 답변을 듣게 되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소립자는 뭔가요?" 이런 식으로 몇시간만 진행하다 보면 정말 "이해"란 걸 하게 됩니다. 물론 전문 텍스트를 보고 공부하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으니 완전하진 않지만, 개념의 이해는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그 분야를 공부하는 데에도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천지차이죠. 수식 몇 개 외워서는 이런 지식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를 획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당찮아 보이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해주려면 그 사람이 "대가"여야 합니다. 대가가 아니고서는 이런 질문에 모든 것을 통섭하여 쉽고 간략한 답변을 내어놓지 못합니다. (여러분 중에 "알고리즘이 뭐에요?"라고 묻는 문외한에게 자신의 언어로, 쉽고 명료한 -- 그러나 조금도 어긋남 없는 --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최적의 사람"을 골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가 유명한 대가라고 해도 겸손할지언정 절대 주눅들지 않습니다. 다짜고짜 그 대가를 찾아가서는 도움을 청하는 것이죠.)
전산학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논리학자 타르스키의 "논리학 입문" 책을 보면 첫 장에 나오는 말이 걸작입니다. 그는 첫 페이지부터 도대체 "변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수학책이 이 개념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을 합니다. 대가는 이런 사람입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상식적인 대상에 접근해서, 사정없이 흔들어 놓고는 아주 명징하고 명료한 상태로 만든 후에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또, 파인만은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어떤 개념이든지 수식을 쓰지않고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그걸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학을 하는 과정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묻다보면 대가를 만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아예 묻지 않는 것보다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JuNe
대여섯시간 동안 질문하는 사람도 대단하게 느껴지고, 그에 맞춰서 대여섯시간동안 답변해주는 사람 또한 대단하다 생각됩니다.